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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동구 Dong gu Ulsan Metropollitan City 사진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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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목록 : 430 총 사진수 : 722
  • 새마을운동 남목마을 안길 넓히기 사업_ 1970년대
    새마을운동 남목마을 안길 넓히기 사업_ 1970년대
    남목마을 새마을운동으로 안길 넓히기 사업에 동참하는 마을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 남성들은 삽과 곡괭이 등으로 땅을 파내고, 여성들은 양동이와 리어카로 흙을 실어 나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초 새마을가꾸기사업을 시작으로 마을 앞길 확장, 마을 청소 및 하수구 정비, 공동 빨래터 및 우물 만들기, 쥐 없는 마을 만들기 등 마을 주민들의 협동과 절약, 퇴폐 근절을 강조하여 가난 탈출과 조국 근대화를 추진하기 위한 잘 살기 위한 운동이었다. 1970년 초기에는 농촌새마을운동, 1974년부터는 공장새마을운동, 1976년에는 도시새마을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었고, 1980년대부터는 새마을운동중앙본부를 중심으로 하는 민간주도운동으로 전환되었다. 사진1,2> 남목마을 안길 넓히기_1970년대 사진3> 일산해수욕장 청소하기_1970년대 사진4,5> 일산진마을 제방쌓기_1970년대 사진6> 마을 하수구 정비하기_1985 사진7> 마을거리 청소하기_1985 사진8> 화정동 도로 정비하기_1985 사진9> 방어동 마을거리 청소하기_1988
  • 현대울산조선소 건설_1972
    현대울산조선소 건설_1972
    울산 미포만의 부지 198만 3,471㎡에 건설되고 있는 현대울산조선소의 초창기 건설 현장 모습이다. 현대울산조선소는 1972년 3월부터 1974년 6월까지 2년 3개월 만에 70만 톤급으로 건립되었다. 1972년 3월에 미포만 백사장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울산 시민 5천여 명이 참석해 현대울산조선소 기공식의 첫 삽을 뜬 후, 1974년 6월에 조선소 준공식과 26만 톤급의 유조선 2척(1호 ‘애틀란틱 배런’과 2호 ‘애틀란틱 배러니스’)의 명명식을 가졌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 일환으로 건립된 현대울산조선소는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동시에 하는 세계 불멸의 기록과 함께 세계 1위의 조선소로 성장하였다. 창업주 정주영 회장은 울산 미포만 사진, 1/50,000 축적지도, 유럽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 도면을 들고 유럽으로 건너간 뒤 영국 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나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내보이며 ‘영국보다 300년 앞선 1,500년에 철갑선을 만들었다’라고 설득한 끝에 영국 차관으로 조선소 건립 자금을 빌린 일화로 유명하다. 현대울산조선소(1972)는 현대조선중공업(1973), 현대중공업(1978), HD현대중공업(2023)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사진1> 현대울산조선소 건설현장 1972 사진2~6> 현대울산조선소 기공식 1972.3.23. 사진7,8> 조선소 전경_독(dock), 방파제, 안벽작업 등 1972 사진9~12> 조선소 건설 현장모습 1973 사진13> 조선소 시업식 1973 사진14> 유조선 1,2호 건조작업 1973 사진15~17> 조선소 준공식에서 故 박정희 대통령 조선소 시찰 모습과 시설 안내하는 정주영 회장 1974 *사진제공_현대중공업 울산시청
  • 일산해수욕장의 피서객_1969
    일산해수욕장의 피서객_1969
    울산의 대표적인 휴양지 중 하나인 일산해수욕장은 무더운 여름의 휴가철이 되면 시민들이 많이 찾는 피서지다. 무더위를 한 방에 날리는 차가운 바닷속으로 뛰어든 사람들, 유료 대여한 배에서 선상의 특별한 경험을 즐기는 사람들, 모래밭에서 신나게 공놀이하는 젊은 청년들,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등 여름을 즐기는 모습은 지금과 별반 달라 보이진 않지만 낭만적이고 평화로워 보인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백사장 가장자리에 줄지어 선 천막은기업체들이 여름 휴가철을 맞은 직원과 그 가족들의 복지를 위해 하계휴양소를 설치한 것이다. 천막 안에 깔아놓은 평상 위에서 싸 온 음식을 먹고 낮잠을 자는 등 휴식을 취했다. 사진1_일산해수욕장의 피서객 (1969) 사진2_ 공놀이를 즐기는 청년들 (1968) 사진3_일산해수욕장 전경 (1968) 사진4_피서를 즐기는 인파들 (1975) 사진5_피서철의 전경 (1982) 사진6_일산해수욕장 전경 (1984)
  • 일산동_1950년대
    일산동_1950년대
    1950년대 일산해수욕장과 대왕암공원 일부가 내다보이는 일산동 일대 사진이다. 사진 왼쪽 상부에는 어풍대가 있는 고늘지구와 그 아래로 초가집이 즐비하게 들어선 일산진 마을과 오른쪽으로는 송림이 우거진 대왕암공원 일부가 보인다. 그 사이를 모래 해변의 일산해수욕장이 자리 잡고 있다. 고늘지구와 일산해수욕장, 대왕암공원이 보이는 일산동은 서너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고, 대부분을 차지하는 넓은 평야는 농사를 일구는 땅이다. 일산동은 조선 정조에 일산진리라 했다가 고종 31년(1894)부터 일산동으로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일산 이름의 유래는 신라 때 왕이 일산(日傘)을 펼쳐놓고 유람을 즐겼다는 데서 비롯되었고 뒤에 일산(日山)으로 바뀌었다. 사진1_ 유분화 사진기증, 울산박물관 소장 (1950년대) 사진2_ 울산시청 제공 (1960년대) 사진3_ 울산시청 제공 (1970년대)
  • 방어진방파제 공사_ 일제강점기
    방어진방파제 공사_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방어진방파제 공사가 한창인 모습의 고토상점 발행의 엽서 사진이다. 방어진방파제는 1900년대 초반 방어진 일대에 고등어잡이가 활기를 띠면서 일본 어선들이 크게 늘자 방어진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조선총독부에 요청하여 만들어졌다. 방파제의 규모는 길이 280m, 아래쪽 너비 55m, 위쪽 너비 25m로 시멘트 10,600톤과 철근 200톤, 흙과 돌 19,300㎥가 사용되었으며, 비용은 당시 화폐로 70만 5천 원으로 현재 가치로는 63억여 원에 해당된다. 공사 기간은 1923년 3월부터 1927년 8월까지 4년 6개월이 걸렸으며 연인원이 19만 5천여 명이 투입된 토목공사였다. 당시 동아일보에 의하면 방파제 축조 공사가 시작된 2년 뒤인 1925년 9월 초순에 태풍으로 인해 48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위 내용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관료, 선주 등으로 구성된 방파제 축조위원회가 주도했던 공사 사실을 새긴 방파제 축조 기념비에 따른 것으로, 기념비는 가로 110cm 세로 240cm, 두께 90cm 규모의 화강석으로 1928년 3월에 만들어졌다. <사진_울산박물관 제공>
  • 보성학교와 성세빈 선생_1929
    보성학교와 성세빈 선생_1929
    동구 일산동에 설립된 보성학교(1922~1945)는 울산의 유일한 민족사립학교이자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다. 3.1운동으로 교육 열기가 확산되면서 1922년에 지역 유지들의 지원으로 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초대 교장이 성세빈 선생이었다. 그밖에 성세륭, 김천해, 박학규, 서진문, 이효정 등이 학생들을 가르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였고, 동면청년회에서 신간회 울산지회로 이어지는 항일운동이 펼쳐졌다. 성세빈 선생 (1893-1938) 1920년 노동야학을 열어 교육활동으로 항일운동을 시작하였고, 1922년 사립보성학교로 전환, 교장을 역임하면서 1945년까지 500여명의 학생들을 배출하였다. 1920년 동면청년회, 1925년 울산군청년연맹, 1928년 신간회 울산지회 활동을 통해 민족교육과 항일운동에 힘썼다. 사진1_ 보성학교 전경 1929 사진2_ 성세빈 선생 초상화 사진3_ 성세빈 선생 고별식 1938 사진4_성세빈 선생(왼쪽)과 서진문 1922 사진5_후손들의 성세빈 선생 공적비 이전작업
  • 현대중공업 외국인사택_1973
    현대중공업 외국인사택_1973
    대추밭으로 불리워졌던 서부파출소 뒤편에 현대중공업 외국인사택의 단독주택 13개 동이 지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중공업 외국인사택은 서부동에 건립된 외국인 전용 주거 공간으로 한때는 파견된 선주사와 가족, 감독관 등 45개국 1천여 명이 머물렀다. 용지 규모는 15만㎡로 1972년~1982년에 단독주택 형태와 1985년~1994년에 아파트형 사택으로 점차적으로 건립되었다. 부대 시설로 클럽하우스, 수영장, 골프연습장 등이 갖춰졌고 1982년에는 외국인 자녀를 위한 12개 학급의 외국인학교도 있었다. 현재는 지웰시티자이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사진1_ 외국인 사택 건립 중 1973 사진2_ 사택 내 수영장 사진3_ 사택 내 외국인학교 사진4_ 단독주택형 사택 사진5_외국인사택 전경 2009 <현대중공업 제공>
  • 울기공원_1977
    울기공원_1977
    포대기로 엄마의 등에 업힌 아기 교복을 입은 남학생 무리 한껏 멋을 낸 옷차림의 여성 부모와 어린 아이들이 함께 가족나들이를 나와 곳곳에 자리잡고 앉은 모습 등 울기공원은 동구뿐만 아니라 울산 시민 전체의 나들이 장소로 유명했던 곳이다. 학교 소풍, 가족 나들이, 직장인 야유회 등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던 곳으로 현재는 전국 유명 관광지로서의 위상이 높은 곳이 되었다. 한편, 울기공원은 대왕암공원의 옛 이름으로 2004년에 이름이 변경되었다. <사진_ 울산시 제공>
  • 주전 제당
    주전 제당
    건너각단제당, 동사당터, 번덕제당, 보밑마을 주포제당, 상리제당, 새마을제당, 아랫마을제당, 중마을제당, 큰불제당, 주전초등학교밑 제당
  • 명덕
    명덕
    명덕 윗동네의 모습
  • 학예회
    학예회
    학예회를 마친 후 찍은사진
  • 고늘에서
    고늘에서
    일산 고늘에서 찍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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