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목록 : 467
총 사진수 : 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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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동_1950년대1950년대 일산해수욕장과 대왕암공원 일부가 내다보이는 일산동 일대 사진이다. 사진 왼쪽 상부에는 어풍대가 있는 고늘지구와 그 아래로 초가집이 즐비하게 들어선 일산진 마을과 오른쪽으로는 송림이 우거진 대왕암공원 일부가 보인다. 그 사이를 모래 해변의 일산해수욕장이 자리 잡고 있다. 고늘지구와 일산해수욕장, 대왕암공원이 보이는 일산동은 서너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고, 대부분을 차지하는 넓은 평야는 농사를 일구는 땅이다. 일산동은 조선 정조에 일산진리라 했다가 고종 31년(1894)부터 일산동으로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일산 이름의 유래는 신라 때 왕이 일산(日傘)을 펼쳐놓고 유람을 즐겼다는 데서 비롯되었고 뒤에 일산(日山)으로 바뀌었다. 사진1_ 유분화 사진기증, 울산박물관 소장 (1950년대) 사진2_ 울산시청 제공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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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진방파제 공사_ 일제강점기일제강점기 때 방어진방파제 공사가 한창인 모습의 고토상점 발행의 엽서 사진이다. 방어진방파제는 1900년대 초반 방어진 일대에 고등어잡이가 활기를 띠면서 일본 어선들이 크게 늘자 방어진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조선총독부에 요청하여 만들어졌다. 방파제의 규모는 길이 280m, 아래쪽 너비 55m, 위쪽 너비 25m로 시멘트 10,600톤과 철근 200톤, 흙과 돌 19,300㎥가 사용되었으며, 비용은 당시 화폐로 70만 5천 원으로 현재 가치로는 63억여 원에 해당된다. 공사 기간은 1923년 3월부터 1927년 8월까지 4년 6개월이 걸렸으며 연인원이 19만 5천여 명이 투입된 토목공사였다. 당시 동아일보에 의하면 방파제 축조 공사가 시작된 2년 뒤인 1925년 9월 초순에 태풍으로 인해 48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위 내용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관료, 선주 등으로 구성된 방파제 축조위원회가 주도했던 공사 사실을 새긴 방파제 축조 기념비에 따른 것으로, 기념비는 가로 110cm 세로 240cm, 두께 90cm 규모의 화강석으로 1928년 3월에 만들어졌다. <사진_울산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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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학교와 성세빈 선생_1929동구 일산동에 설립된 보성학교(1922~1945)는 울산의 유일한 민족사립학교이자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다. 3.1운동으로 교육 열기가 확산되면서 1922년에 지역 유지들의 지원으로 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초대 교장이 성세빈 선생이었다. 그밖에 성세륭, 김천해, 박학규, 서진문, 이효정 등이 학생들을 가르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였고, 동면청년회에서 신간회 울산지회로 이어지는 항일운동이 펼쳐졌다. 성세빈 선생 (1893-1938) 1920년 노동야학을 열어 교육활동으로 항일운동을 시작하였고, 1922년 사립보성학교로 전환, 교장을 역임하면서 1945년까지 500여명의 학생들을 배출하였다. 1920년 동면청년회, 1925년 울산군청년연맹, 1928년 신간회 울산지회 활동을 통해 민족교육과 항일운동에 힘썼다. 사진1_ 보성학교 전경 1929 사진2_ 성세빈 선생 초상화 사진3_ 성세빈 선생 고별식 1938 사진4_성세빈 선생(왼쪽)과 서진문 1922 사진5_후손들의 성세빈 선생 공적비 이전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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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외국인사택_1973대추밭으로 불리워졌던 서부파출소 뒤편에 현대중공업 외국인사택의 단독주택 13개 동이 지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중공업 외국인사택은 서부동에 건립된 외국인 전용 주거 공간으로 한때는 파견된 선주사와 가족, 감독관 등 45개국 1천여 명이 머물렀다. 용지 규모는 15만㎡로 1972년~1982년에 단독주택 형태와 1985년~1994년에 아파트형 사택으로 점차적으로 건립되었다. 부대 시설로 클럽하우스, 수영장, 골프연습장 등이 갖춰졌고 1982년에는 외국인 자녀를 위한 12개 학급의 외국인학교도 있었다. 현재는 지웰시티자이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사진1_ 외국인 사택 건립 중 1973 사진2_ 사택 내 수영장 사진3_ 사택 내 외국인학교 사진4_ 단독주택형 사택 사진5_외국인사택 전경 2009 <현대중공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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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공원_1977포대기로 엄마의 등에 업힌 아기 교복을 입은 남학생 무리 한껏 멋을 낸 옷차림의 여성 부모와 어린 아이들이 함께 가족나들이를 나와 곳곳에 자리잡고 앉은 모습 등 울기공원은 동구뿐만 아니라 울산 시민 전체의 나들이 장소로 유명했던 곳이다. 학교 소풍, 가족 나들이, 직장인 야유회 등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던 곳으로 현재는 전국 유명 관광지로서의 위상이 높은 곳이 되었다. 한편, 울기공원은 대왕암공원의 옛 이름으로 2004년에 이름이 변경되었다. <사진_ 울산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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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제당건너각단제당, 동사당터, 번덕제당, 보밑마을 주포제당, 상리제당, 새마을제당, 아랫마을제당, 중마을제당, 큰불제당, 주전초등학교밑 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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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조선소 기공식울산현대조선소 기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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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덕명덕 윗동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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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예회학예회를 마친 후 찍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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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늘에서일산 고늘에서 찍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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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철도지도일본의 철도지도 히나세 미나미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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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축조비방파제축조비 일제시대